한국인이 사랑하는 인물들

유재석·김연아·손흥민·장미란·박지성·세종대왕·이순신·김구·페이커. 왜 이 이름들이 한국 사람의 마음에 오래 남는지, 공통점부터 이야기해 봅니다.

2026년 4월 18일·읽는 시간 9분·#인물#문화

한국 사람에게 "가장 사랑받는 인물 한 명만 꼽아 보세요"라고 하면, 대답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름표는 비슷합니다. 유재석, 김연아, 손흥민, 장미란, 박지성, 세종대왕, 이순신, 단종, 김구, 페이커. 운동선수에서 왕까지, 예능인에서 프로게이머까지, 독립운동가에서 e스포츠 선수까지 — 나이도 시대도 직업도 다른데, 이상하게 정서적 온도는 거의 같습니다.

이 이름들을 한 줄로 세워두고 오래 바라보면 공통점이 드러납니다.

압도적으로 잘합니다. 그런데 웃습니다.

김연아는 피겨의 교과서라고 불렸고, 손흥민은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왕을 했고, 박지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심장이었습니다. 장미란은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바벨을 들어 올렸고, 페이커는 롤드컵을 다섯 번 들어올린 e스포츠의 상징입니다. 유재석은 한국 예능의 역사와 거의 동의어고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 설 때, 으스대는 모습이 유난히 드뭅니다. 김연아는 금메달을 따고도 "아직 저는 부족한 선수"라는 표현을 썼고, 손흥민은 골을 넣고 동료에게 먼저 뛰어갑니다. 유재석은 30년을 정상에 있는데도 "저는 재능이 없어서 노력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한국 사람이 이들을 "국뽕"이라는 단어와 함께 기꺼이 품는 이유는, 능력 때문만이 아닙니다. 겸손 때문입니다.

겸손하지만, 본업 앞에서는 양보가 없습니다.

재미있게도 이 사람들은 인터뷰에서는 부드러운데, 본인의 무대 위에서는 무서울 만큼 단호합니다. 김연아는 올림픽 전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얼음 위에 섰습니다. 장미란은 "나는 기록을 깨는 게 아니라, 어제의 나를 이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순신은 12척으로 133척을 상대하면서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라는 문장을 남겼습니다. 세종은 눈을 거의 잃어가면서도 한글을 끝까지 완성했고요.

한국 사람은 이런 사람을 좋아합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먼저 이기는 사람. 남을 이기는 것보다, 어제의 자신을 이기는 모습을 더 존경합니다.

단종은 왜 그 목록에 있을까

단종은 이기지 못했습니다.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에서 짧은 생을 마친 어린 왕입니다. 그런데도 한국 사람은 단종의 이름을 오래 기억합니다. 이기지 못했지만, 품위를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이 사랑하는 인물의 조건에는 "승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끝까지 지켰는가"가 더 깊이 박혀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자기를 내려놓은 사람 — 김구

한국인이 오래도록 사랑하는 또 하나의 이름은 김구 선생입니다. 백범일지의 마지막 장에는 너무나 유명한 문장이 있습니다. "나의 소원은 오직 하나,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두 번째 소원도, 세 번째 소원도 마찬가지요." 세 번을 되풀이한 이 한 문장에, 한 사람이 자기 인생 전체를 한 가지 대의에 걸었다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김구의 삶은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상해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수십 년을 타국에서 쫓기며 살았고, 해방된 조국의 땅에서 끝내 암살로 생을 마쳤습니다. 그는 스포츠처럼 "잘한" 사람도, 경기처럼 "이긴"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인물의 조건에는 이런 축이 하나 더 있습니다. 자기 이득보다 공동체를 먼저 둔 사람. 자기 이름을 앞세우지 않고 "우리나라" 세 글자를 위해 삶 전체를 건 사람.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유관순 열사도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한국 사람의 마음 한구석에는 이런 애국의 기억이 아직 살아 숨쉽니다. 국뽕이라는 자조 섞인 단어 밑에 깔려 있는 것도, 결국 이 기억입니다.

국뽕이라는 단어의 정체

"국뽕"이라는 단어는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자조 섞인 웃음 속에서도 한국인은 이 단어를 버리지 않습니다. 그 감정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결국 앞에 적은 이름들에 닿습니다. 저렇게 잘하는데 저렇게 겸손한 사람이, 나와 같은 나라 사람이다. 그게 국뽕의 정체입니다.

한국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되는 길은 의외로 명확합니다. 잘 해내되, 자랑하지 말 것. 싸우되, 먼저 자기 자신과 싸울 것. 이기되, 이긴 뒤에 고개를 숙일 것. 그리고 때로는 — 자기 이름을 내려놓고 더 큰 것에 삶을 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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