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물은 왜 이렇게 좋을까
국토의 70%가 산지. 화강암이라는 천연 필터, 석회질 없는 토양. 한 잔의 물 뒤에는 지질학이 있습니다.
유럽 여행을 갔다가 처음 식당에서 물을 시켰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합니다. 물이 탁하지는 않은데, 뭔가 쓰고, 입 안에 가벼운 막이 남는 느낌. "이게 미네랄이 많다는 그 물인가?"라고 생각하며 그냥 마셨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수돗물 한 잔을 마시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한국의 물은, 정말로, 다릅니다.
산이 많은 나라, 필터가 많은 나라
한국 국토의 약 70%는 산지입니다.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평지보다 산의 능선이 더 많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산의 대부분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설악산, 북한산, 지리산 — 한국인에게 익숙한 산들의 바위는 거의 다 화강암 계열입니다.
화강암은 물과의 관계가 독특합니다. 석회암처럼 물에 녹아 칼슘을 방출하지 않습니다. 단단하고 결정이 조밀해서, 빗물이 스며들 때 천천히 필터링됩니다. 지하로 스며든 물은 화강암 틈을 따라 흐르며 미세한 불순물이 걸러지고, 며칠에서 수십 년 뒤에 샘이나 하천으로 다시 나옵니다. 한국의 산속 계곡물을 그냥 떠 마실 수 있던 것은 우연이 아니라 지질학의 결과입니다.
경수가 없는 나라
물의 경도를 말할 때 "경수(센물)"와 "연수(단물)"라는 표현을 씁니다. 칼슘·마그네슘이 많은 물이 경수고, 적은 물이 연수입니다. 유럽의 많은 지역, 특히 프랑스·독일·영국은 경수 지역입니다. 석회암 지대에서 오는 물이라 미네랄이 풍부합니다. 마시기에는 독특한 맛이 있지만, 생활에는 불편이 큽니다. 커피포트에 하얀 침전물이 쌓이고, 샤워기 구멍이 막히고, 세제가 잘 풀리지 않습니다.
한국은 대부분 연수입니다. 경도 50ppm 이하가 흔하고, 100ppm을 넘는 지역이 드뭅니다. WHO 기준으로 마시기에 매우 적합한 부드러운 물입니다.
그래서 헹굼만으로 끝납니다
이 지질학적 차이는 일상의 아주 작은 동작을 바꿉니다.
한국 사람은 설거지를 하고 나서 거품을 물로 헹굽니다. 당연하게 들리지만, 경수 지역에서는 당연하지 않습니다. 물로 헹구면 물 자체의 칼슘이 식기 표면에 그대로 말라붙어 얼룩이 남습니다. 그래서 유럽의 일부 가정은 식기를 세제 묻힌 행주로 닦고, 헹구지 않고 말리기도 합니다. 이 장면을 한국 사람이 처음 보면 대부분 기겁합니다. "거품 묻은 걸 어떻게 그냥 두지?"
같은 이유로 한국 사람은 샤워의 마지막을 맑은 물로 마무리합니다. 비누 거품을 물로 씻어 내리면 끝입니다. 반면 경수 지역에서는 비누가 물의 칼슘과 반응해 끈끈한 막을 만들기 때문에, 수건으로 몸의 비누를 닦아내는 문화가 일부 있습니다. 이 차이도 한국 사람을 놀라게 합니다. "씻었는데 왜 수건으로 닦아내?"
한 잔의 물 뒤에 있는 것들
한국인이 해외 생수병을 사 마실 때 가장 아쉬워하는 건 "맛"이라기보다, 그 물로는 한국식으로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설거지, 한국의 샤워, 한국의 보리차, 한국의 된장찌개. 이 일상의 배경에는 화강암 산과 빗물 필터링이 조용히 흐르고 있습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쏟아질 때, 우리는 대개 그 물의 여정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물은 수천만 년 된 화강암 산의 틈을 천천히 흘러 내려온 결과물입니다. 한국에서 물은 풍경의 일부가 아니라, 풍경 자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