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처 없이」는 인사말이 아니라 절차 조건이다

C9엔터테인먼트가 EPEX 관련 악성 게시물에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런 공지가 매번 같은 문장으로 끝나는 데는 이유가 있다 — 한국에서 모욕과 명예훼손은 피해자의 의사에 매인 죄다. 그리고 그 절차가 당신에게 닿는지는 당신이 어디서 썼느냐로 갈린다.

🇰🇷 한국·2026년 8월 18일·9분

한국 연예 기획사가 내는 법적 대응 공지는 어느 회사 것을 읽어도 문장이 거의 같다. 그래서 관용구처럼 읽힌다.

그런데 그 문장에 든 낱말들은 서로 다른 법 조문에 하나씩 대응한다. 특히 맨 끝에 붙는 「선처 없이」가 그렇다. 화가 났다는 표현이 아니라, 이 죄들이 한국 형법에서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이 쓰는 말이다.

2026년 7월 30일 C9엔터테인먼트가 낸 EPEX 관련 공지를 놓고, 그 한 장이 실제로 무엇을 켜는지 따라가 본다.

한눈에 보기

항목내용
공지 주체C9엔터테인먼트 · 2026년 7월 30일
계기멤버 백승·뮤가 연 유튜브 채널에 악성 댓글이 몰려 채널이 댓글창을 닫았다
지목한 행위허위사실 유포 · 명예훼손 · 모욕
수집 장소X · 유튜브
예고한 조치민사·형사 양쪽 · 「어떠한 경우에도 선처 없이」
공지에 없는게시물 건수 · 계정 · 고소 접수 여부

이 표에서 제일 중요한 줄은 마지막 줄이다. 고소장이 들어갔는지조차 적혀 있지 않다. 그러니 이 공지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무슨 일이 벌어졌나」가 아니라 「무엇이 시작될 수 있나」이고, 그건 위의 세 낱말이 각각 어떤 죄인지를 알아야 보인다.

「선처 없이」는 인사말이 아니라 절차 조건이다

공지가 지목한 세 행위는 한국법에서 서로 다른 조문에 걸린다. 그리고 오른쪽 끝 칸이 이 글의 핵심이다.

행위조문형량절차상 성격
모욕형법 제311조1년 이하 징역 · 200만원 이하 벌금친고죄 — 피해자가 고소해야 수사가 시작된다
명예훼손 (사실을 적시)형법 제307조 제1항2년 이하 · 500만원 이하반의사불벌죄
명예훼손 (거짓을 적시)형법 제307조 제2항5년 이하 · 1,000만원 이하반의사불벌죄
온라인 명예훼손 (사실)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3년 이하 · 3,000만원 이하반의사불벌죄
온라인 명예훼손 (거짓)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2항7년 이하 · 5,000만원 이하반의사불벌죄

친고죄는 피해자가 고소해야 수사가 시작되는 죄이고, 반의사불벌죄는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이라도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히면 거기서 멈추는 죄다. 즉 이 표의 다섯 줄은 전부 피해자의 의사에 매여 있다.

그래서 소속사가 「합의 없이, 선처 없이」를 미리 적는 것은 감정 표현이 아니라 선언이다. 나중에 합의 요청이 와도 처벌불원 의사를 내지 않겠다는 뜻이고, 글을 쓴 쪽에게는 「지금 지우고 사과하면 없던 일이 된다」는 기대를 접으라는 신호다.

여기에 시한이 하나 더 붙는다. 모욕죄는 친고죄라서 고소할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다 — 범인을 알게 된 날부터 6개월이다. 소속사가 상시 모니터링 창구를 두고 팬 제보를 받는 이유의 절반이 여기 있다. 악플을 나중에 몰아서 처리하면 그사이에 고소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건이 생긴다.

한 가지가 더 있다. 한국법에서는 쓴 내용이 사실이어도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다. 위 표에서 사실 적시와 거짓 적시가 각각 다른 항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 그 뜻이다. 거짓 쪽을 더 무겁게 다룰 뿐, 사실이라는 것이 자동 방어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절차가 당신에게 닿는지는 어디서 썼느냐로 갈린다

그런데 조문이 켜졌다고 해서 전 세계의 계정에 똑같이 닿는 것은 아니다. 한국 형법이 스스로 문을 하나 닫아 두고 있다.

형법 제6조는 한국 밖에서 한국인에게 죄를 지은 외국인에게도 한국법을 적용한다고 정해 놓고, 곧바로 단서를 붙인다. 그 행위가 벌어진 곳의 법률에서 범죄가 아니면 처벌하지 못한다. 법률가들이 쌍방가벌성이라 부르는 요건이다.

그리고 명예훼손은 나라마다 형사냐 민사냐가 정확히 갈리는 분야다.

나라명예훼손·모욕이 형사범죄인가근거
베트남그렇다형법 제155조(모욕) · 제156조(비방)
태국그렇다형법 제326조 · 매체를 통한 경우 제328조
필리핀그렇다개정형법의 명예훼손 + 2012년 사이버범죄방지법의 사이버 명예훼손
인도네시아그렇다전자정보거래법(UU ITE)
미국대체로 아니다민사 손해배상이 원칙이다

이 표는 뒤집어 읽어야 정확하다. 「한국이 여기까지 잡으러 온다」는 목록이 아니라, 한국 형사 절차의 입구가 열려 있는지 아닌지만 보여 주는 줄들이다. 문이 열려 있어도 실제로 신원을 확보하고 소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고, 그건 사안마다 다르다.

다만 방향은 분명하다. 한국 아이돌 팬덤이 두꺼운 나라들은 대체로 이 표의 위쪽에 있다.

같은 문장을 먼저 낸 사건들의 결과는 이미 나와 있다

이번 공지가 어디까지 갈지는 추측하지 않아도 된다. 같은 문장을 몇 달 먼저 낸 사건들이 이미 결과를 냈다.

사건시작나온 결과걸린 시간
지드래곤 · 갤럭시코퍼레이션2026년 2월 · 100여 명 고소법원의 약식명령 벌금 200만~700만원약 6개월
아이유 · EDAM엔터테인먼트계정 한 개의 신원 확보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연방법원에 메타 상대 증거개시 신청(2026년 7월 15일)진행 중

지드래곤 쪽이 이 장르의 표준 결말이다. 100여 명을 고소해서 나온 것은 재판이 아니라 약식명령이었다. 법정에 나가지 않고 서면만으로 벌금이 정해지는 절차다. 액수가 작다고 없던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액수가 붙었다는 것 자체가 판단이 한 번 내려졌다는 표시다. 약식명령이 왜 무죄가 아닌지는 따로 적었다.

그런데 아이유 쪽은 아예 다른 길로 갔다. 형사 공조로 신원을 받아 오는 대신, 미국 법원에 가서 플랫폼이 가진 가입 정보를 내놓게 하는 절차를 밟았다. 스레드 계정 한 개를 상대로 이름·주소·전화번호·이메일·접속 IP를 요구했고, 한국에서 진행 중인 민사소송에 쓰기 위한 것이다.

형사가 아니라 민사라는 점이 여기서 갈린다.

쌍방가벌성 단서는 형사 절차의 문이다. 손해배상 청구에는 그 문이 없다. 그러니 위의 나라별 표에서 아래쪽에 있는 독자라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일의 종류가 달라진다.

고소가 접수되면 그다음은 경찰이 두 갈래로 가르는데, 그 갈림길에서 나오는 「혐의없음」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가 이 장르에서 가장 자주 오역되는 자리다.

그래서 당신 나라에서는

계정 정지가 형사 절차보다 훨씬 자주, 훨씬 빨리 온다. 소속사가 실제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고소가 아니라 플랫폼에 삭제와 정지를 요청하는 것이다. 이건 국경과 무관하게 며칠 안에 벌어지고, 태국·베트남·필리핀·인도네시아 어디에 있든 똑같다.

형사가 막혀도 민사는 남는다. 쌍방가벌성은 형사 처벌의 요건이지 손해배상의 요건이 아니다. 아이유 건이 미국 법원까지 간 것도 민사소송에 쓸 자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사실이니까 괜찮다」는 한국에서 자동 방어가 아니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이 따로 조문에 있고, 온라인이면 형량이 한 칸 더 올라간다.

제보하는 쪽이라면 창구는 소속사 공식 채널이다. 이번 공지는 접수 언어나 양식을 밝히지 않았으니, 회사 공식 SNS의 공지를 직접 확인하는 편이 정확하다. 소속사 발표문이 왜 매번 같은 말로 쓰이는지를 알아 두면 이런 공지에서 실제 정보가 어느 줄에 있는지가 보인다.

아이유 건에 대한 미국 법원의 결정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 결정이 어느 쪽으로 나느냐에 따라, 지금까지 「해외 계정은 사실상 안 잡힌다」로 통하던 자리에 다른 답이 들어설 수도 있다. 그때 바뀌는 것은 법이 아니라 신원을 확보하는 비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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